
100년의 시간을 돌아 고국으로 돌아온 넓적사슴벌레 표본
얼마 전 친한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을 했는데 역시 벌레쟁이님의 결혼식이라 그런지 전국 벌레쟁이분들을 많이 뵐 수 있어 오랜만에 너무나 반가웠다. 그때 벌레총각님이 갑자기 와서 작은 쇼핑백을 주면서 "100년 넘은 넓적사슴벌레 표본이에요 형" 하고 주고 가서 당황스러웠다. 여하튼 결혼식장에서 갑작스레 표본을 받아 조금 창피했는데, 주변을 보니 모두 표본을 들고 교환(?) 식을 하고 계신 벌레쟁이님들을 보고 급 안심이 되었다 ㅋㅋㅋ.
그 후 개인적인 일도 있고 일본 여행도 다녀와서 받은 표본을 살펴보다가 그저 잘 보존된 오래된 넓적사슴벌레 표본인 줄로만 알았는데, 표본 아래 붙은 라벨의 정보를 조사하다 보니 이 표본이 단순히 오래된 표본이 아니라 뭔가 매우 흥미로운 역사가 포함된 표본이라는 냄새가 났다.![]()
핀에 녹이 라벨에 묻어 잘 빠지지 않던 라벨
표본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한 장의 로칼리티 라벨과 컬렉션 번호가 있는 라벨이 추가로 붙어 있었는데, 곤충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계의 라벨은 그 표본이 언제 채집되었고 누구의 손을 거쳐 왔는지를 알려주는 '신분증'과도 같다. 소라벨의 'Quelpaert Corée', 그리고 최근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 컬렉션 라벨의 정보를 본격적으로 자세히 해부해 보도록 하겠다.![]()
귤 밭이 많은 'Quelpart Island' 귤바트 아일랜드(?)
'Quelpaert'는 바로 우리나라 제주도의 옛 서구식 명칭이다. 필자는 예전에 논문 작성 중 왜 제주도를 'Quelpart', 'Quelparet'라고 부르는지 호기심에 제주도 지명에 대해서 검색을 해본 적이 있는데, 외국인이 제주도에 와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는데 제주도민이 여기가 '귤 밭'이라고 대답해서 'Quelpart;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낭설(?)이다.
귤밭 = 큘바트 = Quelpart ???
국가기록원 - 1874년 Dallet가 쓴 『조선천주교회사』(Histoire de L'Englise de Coree)에 첨부된 지도
현재 알려진 진실은 164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 소속의 '켈파트 더 브라크(Querlpaert de Brack) 호'라는 이름의 배가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는 중 제주도를 처음 발견하여 기록에 남겨 해도에 이 지명이 기록되었고, 20세기 초까지는 제주도를 지칭하는 공식적인 서구식 명칭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Corée'는 프랑스어로 한국(고려에서 유래)을 뜻하며, 보통 예전에는 채집 날짜가 정확하지 않을 경우도 많고 따로 채집 일을 표시 안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저렇게 간단하게 라벨링을 했다고 한다.
TOUZ: 368, 370: 프랑스의 곤충학자 앙리 드 투잘랭(Touzalin)의 개인 컬렉션 관리 번호로 본인이 입수한 표본이 아니라 벌레총각님이 얼마나 이 컬렉션을 구했는지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collection Henri de Touzalin: 이 표본이 원래 앙리 드 투잘랭의 소장품이었음을 명시한다.
leg Claude André Lannion: 'leg'는 라틴어 legit의 약자로 "채집자(Collected by)"라는 뜻으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Lannion 지방 출신의 Claude André가 채집한 표본으로 보인다.
Collection Charles Robert: 투잘랭이 1940년에 사망한 후, 그의 컬렉션 일부를 인수한 샤를 로베르(Charles Robert)라는 또 다른 유명 수집가의 라벨. 검색해 보니 찰스 다윈의 이름과도 같은데 '설마 다윈?!' 하며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샤를 로베르는 앙리 투장랭이 1940년에 사망한 후 그의 방대한 컬렉션 중 상당 부분을 인수하여 관리한 당대 유럽 곤충학계에서 아주 유명한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결론!
이 표본은 유명한 곤충학자인
앙리 드 투잘랭의 컬렉션에 있다가
사후 샤를 로베르가 보관하고
있던 표본을 벌레총각님이
입수한 것으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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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de Touzalin을 ChatGPT을 이용해 가상으로 그려본 삽화
앙리 드 투잘랭은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의 고위 공무원(산림감독관)이 자 세계적인 곤충학자로 직업적인 특성상 곤충에 접할 기회가 많았으며 방대한 곤충 컬렉션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 사후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상당 부분이 기증되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제주우리딱정벌레 Eucarabus (Parhomopterus) sternbergi touzalini (Lapouge, 1911) - 2014.07 제주도 한라산
투잘랭의 이름은 우리나라 제주도의 한 곤충에서 만날 수 있는데, 1911년 프랑스의 곤충학자 라푸즈(Lapouge)가 제주도에서 채집된 딱정벌레를 Carabus touzalini(현재는 제주도에 분포하는 제주우리딱정벌레라는 아종)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고 표본 대여와 연구를 도와주었던 투잘랭의 이름을 따서 종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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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잘랭의 귀한 컬렉션이 충우곤충연구소 넓적사슴벌레 컬렉션 상자에 담긴 모습
사진 촬영 후 투잘랭의 유물(?)은 내가 아끼는 제주도 넓적사슴벌레 컬렉션 상자에 넣어두기로 하였다. 그럼 이것으로 제주도에서 태어나 -> 투잘랭 컬렉션 -> 샤를 로베르 컬렉션 -> 충우 컬렉션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바로 100년을 돌고 돌아 다시 동향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오신 넓적사슴벌레 한 쌍 표본을 귀빈으로 모셔 컬렉션의 가운데 배치하였다. 마치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조상님을 영접하고 호위하고 있는 후세들의 모습 같아 맘에 든다. 기왕 제주 넓적사슴벌레 컬렉션 구경을 시작했으니 조금 더 보고 마무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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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남방넓적사슴벌레(?) 및 넓적사슴벌레 와일드 표본 컬렉션
계간곤충에도 연재한 적 있지만 제주도의 넓적사슴벌레(Serrognathus titanus castanicolor)는 특이하게도 큰턱이 짧은 개체부터 중간 그리고 일반적인 넓적사슴벌레 등 다양한 형태의 개체들을 채집할 수 있다.
본인은 2009년 제주도 특정지역에서 채집한 개체를 수년간 누대 한 결과로 가칭 남방넓적사슴벌레(?)로 칭하고 누대 사육을 계속 해왔으며 바로 사진의 한 쌍 표본은 바로 남방넓적사슴벌레의 조상(?) 개체들이다. 제주도 모처에서 우연히 채집한 한 쌍의 2령 애벌레를 채집해서 우화시켰는데 큰턱의 크기가 너무 짧게 나와서 설마라는 기대를 하고 계속 누대를 하게 되었다. 이후로 전부 저렇게 짧은 타입으로만 나와서 가칭 남방넓적사슴벌레로 부르고 사육을 해왔으나 제주도 특성상 완벽한 격리가 되지 않고 또한 다른 곳에서 혼합으로 나오는 곳도 있고 해서 아종으로 처리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10여 년이 넘게 누대를 통한 개체 중 최대 수컷 사이즈는 약 76mm였으며(막시무스 균사 사육 개체), 일반적인 내륙의 넓적사슴벌레와 형태적으로는 비슷하나 큰턱의 밸런스 자체가 완전히 달라서 대만(sika)과 일본의 넓적사슴벌레(pilifer)와 유사한 타입의 넓적사슴벌레 형태로 고정이 된 개체만 우화를 하였다. 하지만 대만과 일본의 아종들과는 큰턱의 내치와 형태가 달라 또 다른 형태인 것이 흥미롭다.
전국 각지와 도서지역의 넓적사슴벌레 표본을 수집하고 있는데 100년 전 제주도에서 프랑스로 갔다가 고국으로 다시 돌아온 귀중한 넓적사슴벌레 표본을 수집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이 귀한 표본을 선뜻 건네주신 벌레총각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포스팅을 마친다.
추천! 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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