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이전 후 이박사님이 처음으로 방문을 하셔서 벌레 책도 보고 잠시 담소를 나누다가 점심을 맛나게 묵고 이박사님이 강원도로 나방 채집을 갈 계획이라고 하셔서 나도 따라나섰다.
이박사님의 등화 머신 픽업 / 등화를 준비 중인 이박사님
그렇게 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 산 밑에 유일한 밥집이었던 새로 생긴 중국집에 찾아갔는데 동네에 문을 연 밥집이 여기 하나였는지 사람이 몰려 거의 밥 먹는데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결국 해가 져서 늦게 등화 채집 장소에 도착을 하였다.
이박사님은 무려 2,000W 발전기에 1,000W 등을 두 개나 킬 수 있는 장비들을 가지고 오셔서 난 발전기도 안 들고 뒤를 따라올 수 있었다. 나도 불 좀 킨다 생각했는데 이분은 무슨 주변 벌레들에게 눈뽕을 테러할 예정이신듯 보였다.
이박사님의 쌍라이트가 켜지자 주변의 어둠은 거치고 대낮 같은 풍경이 되었다. 주변의 벌레들이 놀라서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이건 좀 다른 차원의 등화구나 싶었다.
진짜 불을 켠지 한 1분쯤 되었을까 다우리아사슴벌레가 바로 날아 와서 뒤집혀 있었다. 몇 년 전에 이 근처 조금 저지대에서 8월 말경에 켰을 때 걍사슴벌레도 날아오고 했기 때문에 9월 9일에는 어떤 사슴벌레가 날아올까 궁금했는데 시작부터 흥분되기 시작했다!
역시 늦여름의 사슴벌레!
다우리아사슴벌레가 제일 처음 날아와 주었다.
얼마지않아 주변의 곤충들이 마구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간만에 등화를 나와서 곤충을 구경하니 기분이가 업되기 시작했다. 등화 채집은 일종의 곤충채집 치트키라고 할까? 숲을 뒤져 보기 어려운 곤충들을 쉽게 쉽게 볼 수 있으니 등화가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숲속을 누비며 곤충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인데 한여름 날씨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우리아사슴벌레는 수컷이 계속 날아오기 시작하는데 역시 해발 1000미터 근처라 시기도 시기이고 단연 우점종이었다. 생각해 보면 가장 많이 날아온 갑충 우점종 2위가 다우리아사슴벌레였다.
특별히 다우리아사슴벌레가 필요하지는 않아서 그냥 날아오는 것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괴수급 다우리아사슴벌레가 날아왔다. 아이폰 광각으로 찍으니 막 무슨 외국 곤충같이 나오는 사진발 잘 받는 녀석이었다.
다우리아사슴벌레 Prismognathus dauricus (Motschulsky, 1860)
호주에 주문한 매크로 디퓨져가 아직 도착을 안 해서 내 새로운 매크로 시스템에 이박사님이 쓰시던 구형 디퓨져를 빌려 촬영을 해보았다. 중형급 사슴벌레 중에는 단연 멋진 모습의 다우리아사슴벌레! 언제 봐도 멋지다.
Parry (1864) A catalogue of Lucanoid Coleoptera; with illustrations and descripsions of various new and interesting species.
다우리아사슴벌레는 우리나라 사슴벌레과 중 최초로 학계에 보고된 종이었는데, 1997년 까지는 Heyden (1887)의 사슴벌레 5종이 최초의 기록으로 취급되어 왔었다. 1997년 초 일본에 논문 자료 복사를 위해 일본에 방문해서 신나게 편의점에서 자료를 하루 종일 복사하고 있었을 때 우연히 복사할 자료에 같이 묵여 있던 Parry (1864)의 A catalogue of Lucanoid Coleoptera; with illustrations and descripsions of various new and interesting species. Trans. Entomol. Soc. London.에서 우연히 Cyclorasis Jekelii 란 동물이명(synonym)으로 한국(Chowsan)에서 기록된 다우리아사슴벌레를 발견하여 국내 사슴벌레의 초기록의 역사를 바꾸었다(아깝다 조금만 빨랐으면 국내 갑충 초기록인데...).
여기까지 자랑이었습니다.
말벌 - 뭔가 되게 아플 것 같이 생긴 배 무늬(실제로 아프다...)
다우리아사슴벌레 큰 게 날아와서 이박사랑 떠들면서 신나게 사진 찍고 놀고 있는데 누가 오른팔을 딱 때리고 간 느낌이 났다. 인간의 본능일까? 이것은 곧 벌에 쏘인 것이라는 느낌이 쎄하게 다가왔는데... 이박사한테 "나 벌에 쏘인 것 같아"라고 했더니 이박사는 어떻게 그렇게 스쳐 지나갔는데 쏘냐고 반문을 하였다.
하지만 쏘인 게 맞았고 침에 쏘인 자리가 보이고 그 근처가 슬슬 부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진짜 오랜만에 말벌류에게 쏘였다. 예전에 대학 동아리 Beetles 전시회 디오라마 준비를 위해 통나무를 하나 구해오자고 전시장 뒤에 소나무 잘라둔 것을 그냥 들었는데 그 밑에 장수말벌이 집이 있을 줄이야... 팔뚝에 누가 점프해서 볼펜으로 찍은 줄 알고 무릎을 꿇고 보니 장수말벌이 진짜 한 번 더 찌르려고 배를 위로 들었다 밑으로 다시 내려찍는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보였다. 장갑 낀 손으로 진짜 순식간에 잡아 뜯어 던져버리고 "장수말벌이야 튀어"란 명대사를 남겼었다.
추억은 여기까지 작년 9월 9일쯤은 의료대란이어 응급실에서 받아주지 않는 곳도 많았고, 게다가 이곳은 강원도 산 속 꼭데기이고 강릉까지 아무리 빨리 밟아도 1시간 거리라 ㅠㅠ 혹시 급성 알레르기라도 올까 하고 겁이 났다. 하지만 평소에 알레르기가 있고 하는 체질은 아니어서인지 다행히 첨에 좀 욱신거리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후로 무서워서 차에 알레르기 약을 상비 중이다)
더 자세한 건
아래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이 가능하니
많은 시청 바랍니다~!
그 후에도 다우리아사슴벌레 수컷은 엄청나게 날아왔다. 그에 비해 암컷은 단 한 마리(?)만 날아왔는데 산란하느라 바쁜 건지 암컷은 그 외에 불빛에 유인된 개체가 한 마리도 없었다. 하긴 평소에도 불빛에는 암컷보다는 수컷이 항상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등화에 유인된 장수꼽등이와 여기가 아닌가벼 하고 나온 연가시님
가끔 강원도에 오면 꼽등이나 갈색여치 등에서 연가시가 나오는 모습을 보았는데 역시나 오늘도 연가시를 마주했다. 강한 불빛에 유인된 장수꼽등이를 컨트롤하지 못한 불행한 연가시의 모습이다. 여기가 아닌데 하고 나온 것인지 물가로 유인을 해야 했어야 하는데 이박사님의 강한 쌍라이트가 연가시 컨트롤력도 파괴한 모습이다.
등화친 길가 주변에서 강원우리딱정벌레들이 사냥을 하고 있어서 이박사님과 함께 촬영을 해보았다. 고산의 난폭한 사냥꾼들이다. 나중에 숙소 호텔로 돌아가다 산 정상에서 강원멋쟁이와 진홍단도 한 마리 채집을 하여 3종 세트를 완성했다.
이전에 사진 기기 리뷰에 올렸던 이 다우리아사슴벌레 사진도 이박사님 디퓨져로 촬영한 녀석이다. 채집지에서 플래시 하나로 스튜디오 느낌의 자연스러운 광빨을 낼 수 있다니 세상 많이 좋아졌다. 조만간 디퓨져 리뷰도 올릴 계획이다.
다양한 사이즈의 다우리아사슴벌레 수컷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저지대에서는 관찰이 조금 어려운 종이라 희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름 산지에서 한여름부터 늦여름까지는 엄청난 개체 수를 자랑한다. 산지에서 사슴벌레 애벌레를 채집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가장 쉽게 많이 채집되는 애벌레도 역시 다우리아사슴벌레의 애벌레이다.
9월 9일은 늦여름이라 하기도 좀 그렇고 초가을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어정쩡한 날짜라 그 외에 초여름에는 보기 힘든 곤충들도 등화에 유인이 되었다.
제대로 등화용으로 나온 텐트로 등화를 해보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주변을 탐색 중이신 이박사님의 모습...
매크로 디퓨져를 쓰니 나방들도 분위기 있게 사진이 나온다. 이박사님은 카토칼라류를 주로 채집하러 온 것인데 생각보다 늦여름에 나오는 좋은 종들이 오지 않아 살짝 실망을 하셨다.
나방 마스터 이박사님은 계속해서 필요한 나방들을 채집해 독병을 이용해 나방을 정리 중이셨다. 마치 나방 장례지도사를 보는듯하였다. 하긴 대학원 때 나도 나방 연구실에 있었기 때문에 나가면 독병에 나방을 계속해서 주워 담고 심지어 동료들은 미소 나방을 현장에서 바로 독병으로 처리해서 전시까지 했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등화 하면 또 가끔 레어 한 하늘소도 날아오는데 이날은 북방곤봉수염하늘소만 날아오고 다른 종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시 늦여름-초가을 사이라 그런지 재미난 갑충이 오지 않는 것이 가장 심심했던 점이다.
오늘의 대 우점종은 도토리밤바구미였다. 한두 마리 날아오기 시작하더니 등화 텐트 주변에 온통 이 녀석들뿐이었다. 아마도 이 주변에 도토리들이 무르익을 시즌이라 그런지... 많아도 너무 많았다 ㅠㅠ
R5 Mark II + RF 100mm Macro + Leica 1.5x
나중에 사무실에 오니 카메라 가방에서 이 녀석들의 사체가 계속 나왔다 ㅎㅎㅎ. 덕분에 RF 100mm 매크로에 추가 접사렌즈를 테스트 중인데 그중 하나를 사용해서 촬영해 보았다. 나중에 포커스 스태킹 하기 좋은 초소형 바구미다.
다음날 숙소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나서 읍내에서 아침을 먹고 왕나비를 촬영하기 위해 이박사님이 봐둔 임도로 가기로 하였다. 여름 내내 서울에서 눅눅한 공기만 마시다 청명한 강원도 날씨를 공기를 마시니 너무 좋았다.
날씨는 무지 좋았는데 바람이 좀 불어서 그런지 시기를 잘못 맞추었는지 사진 촬영하고 싶었던 왕나비는커녕 진짜 곤충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곤충 사진 몇 장을 담아 내려왔는데... 어두운 곳에만 곤충이 보였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일정 때문에 이박사님은 먼저 집으로 떠나고 나는 무슨 또 끝까지 왕나비를 보겠다고 예전에 많이 봤던 곳으로 차를 몰고 또 갔는데...
산 중턱까지 막 뛰어 올라갔는데 슬프게도 전봇대에서 우화 한 나비 번데기 껍질들만 촬영하고 내려왔다... 덕분에 맑은 산공기와 강제 등산으로 체력을 얻었다.
내려와서 근처 막국수집에서 막국수를 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밀린 채집기 숙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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